2003년 9월 24일, 흐린 수요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그날 아침, 유영철은 옷을 단정히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남색 점퍼, 검은색 작업모, 흰 장갑.
손에는 서류 봉투를 들었고, 안에는 고무장갑과 망치가 들어 있었다.
그는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그날 ‘죽이는 법’을 연습하러 가는 중이었다.
“수도 검침 나왔습니다.”
아파트 현관 앞, 초인종을 누르며 그는 공손하게 말했다.
그 말에 문은 쉽게 열렸다.
그는 이미 여러 번 이런 식으로 부유한 노인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는 법을 익혔다.
그날의 타깃은 72세 여성 김 씨.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고, 남편은 외출 중이었다.
거실로 들어선 그는 천천히 둘러봤다.
넓고 깔끔한 집.
벽에 걸린 액자와 도자기, 깔끔한 쇼파 커버.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데서 살면, 사람 구실 하는 것 같겠지.”
김 씨가 수도 요금 고지서를 찾으려 잠깐 등을 돌린 순간,
유영철은 주머니에서 망치를 꺼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머리를 가격했다.
“툭.”
살짝 부딪힌 듯한 첫 타격에 김 씨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는 연속적으로 망치를 내리쳤다.
피가 거실 바닥에 튀었고, 김 씨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숨을 고르며 망치를 내려놓았다.
사람을 처음 죽였지만, 떨리진 않았다.
그 순간 느껴진 감정은 두려움도, 죄책감도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묘한 해방감과 정적이었다.
그러나 예상 못 한 일이 일어났다.
김 씨의 남편이 마침 귀가한 것이다.
“여보… 누구야?”
현관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다가왔다.
유영철은 망치를 다시 들었다.
남편은 현장을 보고 놀라움에 소리쳤고,
그는 그 남성에게도 똑같이 망치를 휘둘렀다.
두 사람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다.
살인을 마친 유영철은 황급히 집안을 뒤졌다.
지갑, 현금, 귀금속.
그러나 돈을 훔치는 건 목적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덤’이었다.
그는 욕실로 들어가 피 묻은 망치를 씻고, 준비해온 장갑과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현장을 빠져나오는 그의 얼굴엔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미소가 있었다.
“해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다음날 뉴스에서는 노인 부부 피살 사건이 짧게 보도되었다.
“강도살인 가능성”이라는 수사 방향이 곧 따라붙었고,
범인은 “도주 중”이라는 문장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경찰은 몰랐다.
그 살인이 단지 시작이라는 걸.
그 망치가, 곧 습관이 된다는 걸.
그리고 유영철은 그날 이후로 인간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의 살인은, ‘성공적인 첫 시도’로서 확신을 줬다.
그리고 곧이어, 두 번째 살인, 세 번째, 네 번째…
피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부유층에 대한 분노를 쏟아 냈으나
사실 그는 철저하게 자신보다 약자만 노린 비겁자 였다.
유영철의 자백 중 발언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사람 죽이는 게 생각보다 쉽다는 걸요.”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두 번째부터는 오히려 차분했어요.”
“부자들이나 기득권들이 죽어야 나라가 깨끗해진다고 믿었어요. 그게 내 정당성이라고 생각했죠.”
2003년 11월1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조용한 골목 안에 자리한 2층짜리 단독주택.
노부부와 가정부 한 명이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었다.
주택 앞에는 여전히 오래된 수도 계량기가 있었고,
그날 오전 10시, 누군가 검은 점퍼를 입고 조용히 그 앞에 섰다.
“검침 나왔습니다.”
낮은 목소리, 단정한 차림.
주인 노인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유영철은 수도검침원으로 위장한 채 침입했다.
그가 목에 걸고 있던 건 진짜 검침기가 아니라,
망치였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노인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든 가정부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휘둘렀다.
집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순간엔 그냥, 조용한 게 좋았어요.”
— 유영철의 자백
이쯤, 유영철에 대한 수사망이 접차 좁혀지고 있었다.
거실 구석에 낡은 금고를 발견한 유영철은 이를 의도적으로
훼손한다. 그러나 잘 열리지 않던 금고를 열다 다친
유영철은, 자신의 흘린 피로 인해 추적이 당할까 두려워
모든걸 태우기로 한다.
유영철은 주방에서 기름을 꺼내 거실 카펫에 뿌렸다.
신문지를 말아 만든 도화선에 불을 붙이자,
작은 불길이 번졌다.
곧이어 붉은 연기와 함께 방 안이 뒤덮였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천천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골목을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모습이 CCTV에 찍히게 된다.
유영철의 실체를 확인한 첫 순간 이었다.

유영철의 이 첫 단계 범행은 단순한 강도살인이 아니라,
사회 계층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증오,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여성 대상 연쇄살인으로 가는 도약점이었다.
“부자를 죽이는 건 정의다.”라는 그의 망상은,
곧 “여자도 똑같다”는 사고로 연결되며 살인은 더욱 잔혹해지고 대담해진다.
타깃을 바꾸다 – 여성 /노숙자/무속인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느꼈다.
‘부자들’은 어렵다.
경비가 있고, CCTV도 늘고 있다.
수사망도 조여오고 있었다.
그래서 바꿨다.
더 쉬운 대상으로.
성매매 여성들. 그들을 유인하는 식으로 수법을 바꾸었다.
인터넷 채팅방, 성인사이트.
접속만 하면 수십 명의 여성들이 번호를 남기고 있었다.
그는 그들 중 하나를 고르고, 모텔로 불렀다.
“탈의하세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에는 이미 망치가 들려 있었다.
“어차피, 이 여자들도 죽어 마땅하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내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감정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죽이고, 묻고, 다시 죽였다.
지금부터는 ‘쾌감’이었다.

2004년 3월 초.
신림동 모처의 모텔.
그가 기억하는 건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핑크색 블라우스였다.
그는 문을 열어주고, 여자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뒤에서 망치를 들었다.
두 번째 타격에 여자는 그대로 쓰러졌고, 침대 시트가 피로 물들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방 안을 정리했다.
피해자의 소지품을 챙기고, 시신은 이불에 싸서 택시를 타고 야산으로 옮겼다.
기묘하게도, 그날이 첫 번째 '쾌감'이 느껴진 날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죽인 다음부터 머리가 맑아졌어요. 뭐랄까, 속이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2004년 3월부터 7월까지
서울 전역, 신림, 신촌, 영등포, 구로, 그리고 경기도 안산까지
그는 같은 수법으로 최소 11명 이상의 여성들을 살해했다.
그는 먼저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접속해 여성을 고르고,
직접 통화한 후 모텔에 미리 들어가 대기했다.
대부분 범행은 오전 10시~오후 6시 사이,
낮 시간의 한적한 모텔 방에서 이뤄졌다.
범행 후 그는 시신을 야산이나 빈터, 쓰레기장 근처에 유기했다.
때론 시체를 다시 찾아가 보기도 했고,
한 피해자는 심장과 내장을 꺼낸 뒤 태워 없애기도 했다.
그는 시신을 불태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 같지 않게 죽였는데, 흔적이 남으면 안 되잖아요.”
“태워버리면, 내가 뭘 했는지도 지워지는 것 같았어요.”
경찰은 사라지는 여성들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이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건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자발적 실종 아닐까요?"
"금전 갈등으로 도망간 것 같습니다."
유영철은 경찰의 그 '방심'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대담해졌다.
- 모텔에서 살해
- 시신 훼손
- 심지어는 일부 사체의 심장과 내장을 꺼내 태우기도 했다
그는 종종 다시 시신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무덤을 보고 웃고, 때로는 돌을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사람 죽이는 게 이렇게 쉬운데, 왜들 안 하지?"

2004년 상반기, 유영철은 강북 지역을 돌며 새로운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무속인 여성을 만났다.
여성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고, 영적인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참 잘도 한다.’
‘이런 사기꾼이 한둘이겠나.’
그리고, 그는 이 여성이 꽤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며칠 후, 그는 무속인 여성이 있는 장소로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망치가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운이 좋으시네요. 오늘은 기운이 아주 맑아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망치를 꺼내 들었다.
무속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피했지만,
첫 타격은 정통으로 머리를 강타했다.
“그 순간, 귀에서 피가 나오더군요. 조용해졌어요.”
시신은 현장에서 그대로 두었고, 지갑과 금품을 챙긴 뒤 조용히 사라졌다.
“그 여자는 사기꾼이었고, 그런 사람은 없어져야 마땅했어요.”
— 유영철 자백 중
그는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들을 보며 혼잣말을 자주 했다.
“쟤네는 왜 사냐?”
“쓸모없잖아.”
그가 처음 노숙인을 살해한 건 2004년 초 여름, 서울역 근처였다.
밤늦게,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남성에게 다가가
담배를 하나 건넨 후, 말을 걸었다.
“춥죠? 잘 데 있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마치 도와주려는 듯 다정하게 대했다.
근처 쓰레기장 옆 공터로 데려간 후,
주운 벽돌로 남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소리도 크지 않았다.
잠들기 직전의 상태였기에, 남자는 반응하지 못했다.
며칠 후, 그는 또 다른 노숙인을 죽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 더럽고, 짜증났다”고 했다.
유영철의 마지막 범죄 – 마지막 유혹, 마지막 실수
2004년 7월 1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모텔.
밖은 무더웠고, 습기 찬 공기가 바닥을 기어 다녔다.
유영철은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왼손에는 망치, 오른손엔 휴대폰.
그는 익숙하게 번호를 눌렀고, 짧은 통화를 마쳤다.
“룸 303입니다. 도착하시면 연락 주세요.”
그는 이미 수십 번 이 과정을 반복해왔다.
다만 이번만은, 자신이 잡히게 될지 몰랐을 뿐이다.
그날 그가 부른 여성은 30대 중반의 성매매 종사자 A씨였다.
두 사람은 성인 사이트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고,
A씨는 흔히 그랬듯 정해진 시간에 모텔을 찾았다.
문이 열렸다.
익숙한 방식이었다.
A씨는 조용히 들어왔고, 눈치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대화 몇 마디를 주고받고, 그가 등을 돌린 순간.
망치가 머리 위로 올라갔고, 그대로 A씨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바닥에 쓰러진 여성이 신음소리를 내자,
그는 전기선을 꺼내 목을 감고, 천천히 조였다.
그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표정도, 감정도 없었다.
이 사건은 이전과 달랐다.
그는 시신을 그 자리에서 해체하지도, 불태우지도 못했다.
모텔이라는 밀폐된 공간, CCTV, 직원의 존재.
그는 다급히 시신을 이불에 싸서 캐리어에 넣은 뒤,
택시를 타고 경기도 안산 인근 야산으로 향했다.
시신은 깊이 묻지 못했다.
삽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뭇가지로 대충 덮은 뒤, 그대로 돌아왔다.
그날 밤, 그는 피 묻은 옷을 정리하며 말했다.
“이번 건, 좀 서두른 감이 있었지.”
검거
“실종 신고요? 누구세요?”
“제 동생이요… 연락이 안 돼요.
성매매 쪽 일을 하긴 하는데… 며칠 전부터 통화가 안 돼요.”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력계 형사 정수현(가명)은
조금은 흔한 실종 신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고자가 말한 ‘마지막 행선지’가 모텔이라는 말에
그는 귀를 기울였다.
“어느 모텔이라구요?”
“신○ 모텔, 영등포에 있는 데요. 7월 13일 낮에 나간 이후로...”
수사의 첫 걸음 – 통화 기록
피해자 A씨의 휴대폰 통화기록이 출력됐다.
박형사 는 눈을 좁혔다.
“마지막 통화… 유영철? 이 사람 누구야?”
그 번호로 걸려온 통화는 단 하나.
딱 2분 13초.
그리고 이후 연락 두절.
박 대리는 말없이 모니터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뭔가 다르다.”
모텔 CCTV – 흐릿한 그림자
7월 15일.
형사들이 해당 모텔의 CCTV를 확인했다.
형사 정: “오전 11시 04분, 여자 들어오네.”
형사 박: “근데… 나가는 건 없어.”
정: “…그럼?”
영상은 흐렸다.
하지만 1시간 20분 뒤,
모자와 마스크를 쓴 중년 남성이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장면이 잡혔다.
박 대리의 손끝이 멈췄다.
“…저거, 저 사람이네. 유영철.”
잠복과 추적 – 검은 코란도
차량 조회 결과,
유영철은 검은색 코란도 밴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고
경기 안산과 서울을 오간 통신기록이 확인됐다.
경찰은 7월 17일 밤부터 유영철의 자택 인근에 잠복을 시작했다.
무려 26시간째, 잠복 중.
7월 18일 오전.
현관문이 열렸다.
박 형사: “나온다!
형, 형… 맞지? 저 사람, 저 남자지?!”
정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유영철이야.
정확히 저 사람이야.”
검거 – 2004년 7월 18일, 오전 9시 40분
형사들이 뛰어들었다.
“유영철 씨죠?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을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유영철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손을 들며 말했다.
“아… 드디어 왔네요.”
형사 정은 수갑을 채우며 그를 노려봤다.
“지금 웃음이 나와?”
유영철은 말했다.
“…웃긴 게 아니라요.
그거 하나로 절 잡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미제사건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
2004년 7월 18일 오후,
서울경찰청 강력계 취조실.
유영철은 형광등 아래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두 시간 전, 그는 검거됐다.
경찰은 그를 한 건의 성매매 여성 살인 혐의로 체포했고,
지금 막 자백을 받으려는 중이었다.
“목격자는 없고, CCTV는 가렸고,
딱 네가 마지막이야.”
형사는 수갑을 벗긴 유영철에게 A4 용지를 건넸다.
“여기다 써. 네가 했던 거.”
유영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볼펜을 들었다.
하지만 종이를 한 줄 채 쓰기도 전에,
그는 책상에 손을 얹고 미세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으윽… 저기… 간질이… 올 것 같아요.”
형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유영철은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내려왔다.
“야, 괜찮아? 야!”
형사가 허리를 숙여 다가가려는 찰나.
벌떡.
유영철은 순식간에 일어나
열려 있던 조사실 문을 밀고 그대로 복도로 튀어나갔다.
“유영철이 도망쳤어! 출입문 막아!!!”
강력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유영철은 이미 계단을 내려가 1층을 통과했고,
출입문을 지나 도심 속 인파로 섞여버렸다.
감시카메라도, 경비원도, 아무도 막지 못했다.
그는 평범한 회색 반팔 셔츠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그 모습은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았다.
영등포 도심 속,
그는 마치 산책을 하듯 걸었다.
“도주입니다. 실탄 장전.
서울 전역 비상 걸어. 영등포역, 여의도, 월미도까지 다 막아.”
경찰 지휘부는 경악했다.
국내 최악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자백 도중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고,
위치 추적도 불가능했다.
수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고,
남은 건 그가 다시 사람을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그 시각, 영등포역 인근 거리.
유영철은 조용히 걷고 있었다.
왼손에는 작은 검은 가방,
주머니엔 수면제 몇 알이 들어 있었다.
‘월미도까지 가면…
바다 앞 벤치에 앉아 조용히 죽는다.
그럼… 끝이겠지.
아무도 진실을 모르고.’
‘…그리고, 백 명 채우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오후 9시 50분.
영등포역 지하상가.
형사 박 대리는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경찰의 음성에 집중하고 있었다.
“흰 셔츠, 슬리퍼, 조용히 걷는 남자.
눈, 마주치면 바로 붙잡아.”
그때였다.
지하상가 입구 근처.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걷는 한 남자가 보였다.
뭔가 이상했다.
시선이 사람을 보지 않고,
목이 움츠러들고 있었으며,
주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표정.
박 형사는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유영철! 거기서 멈춰!!”
그 남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들었다.
“역시… 여기까지였네요.”
— 유영철, 재검거 당시 첫 마디
경찰은 유영철을 제압하고
소지품을 확인했다.
- 수면제 6정 (치사량)
- ‘월미도’라고 적힌 메모
- 현금 3만 원
- 성인용 사이트 전화번호 메모
형사 박이 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 정말 죽으러 가고 있었어.”
자택 압수수색 – 결정적 증거들
7월 18일 오후.
유영철의 집에서 발견된 것은 충격적이었다.
- 피 묻은 담요
- 여성 지갑과 가방
- 망치
- 전기선
- 포장용 이불
형사 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야.”
유영철은 자택에서 끌려나가며 담담히 말했다.
“정리 좀 하고 가면 안 될까요?
집이… 더러워졌네요.”


취조실의 괴물
2004년 7월 18일, 서울경찰청 강력계 취조실.
형광등이 낮게 깔린 방 안,
유영철은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형사가 묻는다.
“○○모텔에서 실종된 여성, 네가 죽였지?”
유영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근데 그 여자만은 아니에요.”
“……뭐?”
그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 눈은 평범한 중년 남자의 눈이었지만,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죽인 사람, 꽤 많습니다.”
리스트
유영철은 종이와 볼펜을 요청했다.
형사들이 주저하자,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말로 하면 헷갈릴까봐요. 차라리 쓰는 게 빠르죠.”
그는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논현동 9월. 노인 부부.”
“신촌 모텔 3월. 여성.”
“북한산 근처 무속인. 벽돌.”
옆에 있던 형사 하나가 종이를 슬쩍 봤다.
줄이 20개가 넘었다.
“이게… 다 사람이야?”
유영철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정리한 사람들입니다.”
프로파일러의 등장
이후 경찰은 국내 최고의 범죄심리 분석관,
권일용 프로파일러를 긴급 호출했다.
권 프로파일러는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유영철을 마주했다.
“유영철 씨.
그쪽은 지금, 아주 중대한 고백을 하셨어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죠?”
유영철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나는 당신을 분석하러 온 사람입니다.
왜 죽였는지, 왜 멈추지 않았는지.
그걸 묻고 싶어서 왔어요.”
잠시 정적.
그는 입꼬리를 약간 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대화 – 인간의 흔적을 꺼내기 위한 심리전
권 프로파일러는 조심스레 유영철의 가족 이야기를 꺼낸다.
“부모님은 살아 계시나요?”
“죽었습니다.
저를 때리던 아버지와… 아무 말 없던 어머니.”
“자식은요?”
“아들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당신의 피해자처럼 그렇게 죽어도 괜찮았을까요?”
유영철은 눈을 깜빡였다.
그 뒤 천천히 말했다.
“그 여자도 엄마였죠.
근데 날 버렸잖아요.
사람이, 사람한테 그렇게 할 수 있나요?”
“…그래서?”
“…그때부터 여자는 다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죽인 건… 그 여자 하나였어요.
나머지는, 그 여자의 그림자였습니다.”
감정 없는 회상
“죽일 때… 무슨 생각이 들었죠?”
유영철은 정색도, 웃음도 없이 말했다.
“처음엔… 손이 떨리더군요.
하지만 두 번째부턴 괜찮았어요.
살인은 생각보다 조용해요.”
“그 사람들의 눈은… 안 떠오르던가요?”
“아뇨.
기억 안 납니다.
그냥, 문 열고 들어오면 끝이었어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절차였어요.”
마지막 진단
취조가 끝난 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조사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유영철은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과,
복합적 피해망상, 그리고 비인간화된 사고 체계를 가진 인물이다.”“그의 범행에는 감정이 없다.
죄책감도 없다.
오직 ‘정리’라는 단어로 포장된 폭력이 있다.”
그리고, 남겨진 것
취조실을 나서며 형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그 말을 들은 유영철이 뒤에서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이미 오래전에 버렸어요. 그런 감정은.”
재판
2004년 9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법정 문이 열리고, 유영철이 천천히 들어왔다.
수의는 깨끗했고,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피해자 유족들은 방청석에 앉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흐느끼고, 누군가는 이를 깨물고 있었다.
재판장이 묻는다.
“피고인 유영철,
당신은 이 법정에서 20명 이상의 생명을 빼앗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영철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한 명만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다 그 여자였습니다.
나를 버린, 그 여자.”
검찰 측 진술
검사는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은 지난 1년간 수도권 일대에서 총 20명을 살해했습니다.
부유한 노인, 성매매 여성, 무속인, 노숙인…
그는 이들을 '사회 정리 대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범죄라기보다, 인간의 가면을 쓴 괴물의 학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쳤다.
“국가는 이 괴물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이는 정의이며, 생존자와 유족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피고인 최후진술
재판장이 유영철에게 물었다.
“최후 진술을 하십시오.
자유롭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는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쓸모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저도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그는 피해자 유족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말했다.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리했을 뿐입니다.”
선고 – 2004년 10월 27일
형사합의 22부는 사형을 선고했다.
판결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피고인 유영철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조차 갖추지 못한 채,
20명 이상을 살해하고도 반성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형 외에 다른 처분은
사회의 정의, 유족의 고통, 국가의 책무를 만족시킬 수 없다.”
재판장은 마지막으로 판결을 고지했다.
“피고인 유영철, 사형을 선고합니다.”
유영철의 반응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갑을 찬 채
다시 천천히 일어났다.
그 눈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분노도, 두려움도, 슬픔도 없었다.
그저, 조용했다.
“예상대로군요.”
— 유영철, 사형 선고 직후 독방에서 남긴 말
논란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

이 사건은 언론과 대중의 큰 비판을 받았다. 특히, 경찰이 피해자 유족을 보호하기는 커녕,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샀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에서는 경찰의 과잉 대응을 비판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인육 섭취 논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인육을 먹은적이 있다고 진술 하였다.
당시 유영철은 "정신이 맑아지고 먹고나면 몸이 좋아진다"며 인육을 먹은 이유를 전했다.
하지만 경찰은, 유영철의 인육 섭취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감생활논란
2004년 21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교도관과 유착해
성인 화보, 일본 만화, 성인 소설 등 불법 물품을 몰래 반입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KBS 취재진이 입수한 유영철의 자필 편지에서 비롯되었다.
유영철의 편지: “잡지 사이에 끼워 보내달라”
유영철은 서울 인근의 도서·물품 대행업체에 보낸 편지에서,
노골적으로 이렇게 요구했다.
“계좌로 돈은 보냈다.
성인 화보, 일본 만화, 성인 소설을 보내달라.
노골적인 사진은 잡지 사이에 숨겨서 보내라.
반드시 ○○ 교도관 앞으로 보내라.”
이 내용은 법무부 교정 지침상 명백한 금지 대상 행위로,
특히 **‘교도관 명의로 택배를 보내는 행위’**는 전례조차 없는 불법 행위다.
40점 만점에 38점?
유영철의 사이코패스 점수: 38점 / 40점
강호순 27점,조두순 29점,이은해31점,김일곤33점 등이며 유영철은
이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점수가 나왔다.
- 평가 도구: PCL-R (Psychopathy Checklist – Revised)
- 평가자: 당시 사건에 투입된 권일용 프로파일러 등
- 참고 기준:
- 30점 이상 → 사이코패스 진단
- 일반인 평균 점수: 2~5점
- 중범죄자 평균 점수: 20점 내외
- 40점 만점에 가까운 경우는 전형적 사이코패스로 분류됨
유영철의 옥중편지
“유영철의 편지는 자백이 아니다. 자기 연출이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유영철이 수감 중 작성한 자필 편지를 분석하며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동기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 사고의 결과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특히 유영철의 편지가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주목했습니다:
반성 없는 자기정당화
유영철은 편지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회가 썩었기 때문에 내가 나섰다”,
“여성들이 함부로 몸을 놀린 대가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권일용은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유영철은 끝까지 ‘자신은 사회의 정화자’라는 왜곡된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 자기합리화이며,
글을 통해서조차 피해자나 유족에 대한 공감은 전혀 없다.”
자신의 이미지 연출 욕구
편지 곳곳에서 유영철은 자신을 지적이며 논리적인 인물로 묘사하려 했고,
‘자신은 어릴 때부터 버림받고 무시당해왔다’며 사회 탓, 가족 탓, 여성 탓으로
살인의 동기를 옮깁니다.
“그는 글을 통해 자신을 ‘괴물’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희생자 또는 심판자’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철저히 계산된 자기 연출이다.”

그 후의 이야기
2025년 현재.
그는 부유층 노인 9명, 성매매 여성 11명,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여전히 교도소에 있다. (자백 26명)
대한민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는 살아 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와 책, 방송으로 재구성되며 사회에 긴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괴물은 언제 만들어지는가?"
"사회는 그 탄생에 책임이 없는가?"
유영철 사건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
1. 수사제도 개편
- 성매매 여성 실종 신고 무시 논란
→ 경찰이 피해자의 ‘직업’에 따라 수사 강도를 달리했던 점이 강하게 비판받음
→ 이후 피해자 직종 관계없이 실종·범죄 수사 일원화 지침 도입 - 연쇄살인 수사 매뉴얼 부재
→ 유영철 검거 이전까지 ‘연쇄성’을 고려하지 않은 개별 사건 수사
→ 이 사건 이후 전담 프로파일러 제도 정비 및 범죄분석팀 상설화
2. 프로파일링 제도 본격 도입
- 권일용 등 국내 1세대 프로파일러들이 유영철 사건 분석을 계기로
현장 심리 분석, 수사 지원, 범죄자 분류 체계 확립에 기여 - 이 사건은 한국형 사이코패스 평가 도구(Korean PCL-R) 적용 사례로 인용됨
3. 사형제 논의 재점화
- 유영철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아직 집행되지 않음
- 이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 존치’ 여론이 급상승
(한때 80% 이상이 사형 찬성 입장) - 사형폐지론자들도 “유영철은 예외”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이 컸음
4. 성매매 산업과 여성 혐오 문제 주목
- 유영철이 주로 성매매 여성만을 노렸던 2단계 범행에서
여성 혐오적 동기와 통제욕이 결합된 범죄 양상이 지적됨 - 이후 성매매 종사자의 안전 보호 정책,
범죄 위험군의 여성 대상 범죄 재분석 체계 확립됨
유영철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
유영철 사건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러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에 영향을 주었거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 1. 《추격자》(2008, 감독: 나홍진)
직접적 모티브 1순위
- 하정우가 연기한 살인범 ‘지영민’ 캐릭터는 유영철의 성격, 말투, 태도에서 영향을 받음
- ‘성매매 여성만을 노리는 연쇄살인’, ‘집에서 직접 시신을 훼손’, ‘당당한 자백’, ‘도주 후 다시 체포’ 등의 설정이 매우 유사함
- 감독 나홍진이 실제로 유영철 수사 자료를 참고했다는 증언도 있음
📺 2.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2022, SBS 드라마)
-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도입 과정을 다룬 실화 바탕
- 권일용 프로파일러 실화를 재구성한 내용이며, 유영철 사건이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해당 사건이 실제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보여줌
🎥 3. 《악마를 보았다》(2010, 김지운 감독)
- 유영철 + 정남규 + 강호순 등 여러 연쇄살인범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된 하이브리드 캐릭터
- 살인을 일상화한 인물의 무감정함, 계획적인 유인 수법 등이 유영철의 성격과 유사
🎭 4.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 – 유영철 편》
- 2004년 ~ 2005년 방영
- 범행 동기, 수법, 피해자 프로파일, 경찰의 초기 실책까지 자세히 다룸
- 방송 이후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에 대한 대중적 관심 폭발
📖 5. 범죄심리학 책들에 단골 사례로 수록
- 《한국의 사이코패스들》
- 《프로파일러: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의 기록》 (저자: 권일용)
-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 자체는 허구지만, 캐릭터 형성에 유영철 요소 반영
🧾 유영철 사건 일지 (2003.09 ~ 2004.07)
1단계: 부유층 노인 대상 침입 살인 (2003.09 ~ 2003.11)
- 2003.09.24: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모 씨(73세)와 부인 이모 씨(68세)를 자택에서 둔기로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3.10.09: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관리원 고모 씨(61세)의 집에 침입해, 아내(60세), 어머니 강모 씨(85세), 지체장애가 있는 아들(35세) 등 일가족 3명을 둔기로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1아무도찾지않는바람부는언덕의이름모를블로그+1
- 2003.10.16: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모 씨(69세)를 둔기로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3.11.18: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모 씨(87세)와 배모 씨(57세)를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금고에 불을 지름.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1과학온+1
2단계: 성매매 여성 대상 유인 살인 (2004.03 ~ 2004.07)
- 2004.03.15: 서울 신촌에서 전화방 종업원 권모 씨(23세)를 유인해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4 ~ 2004.05: 신원 미상의 여성(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5.07: 신원 미상의 여성(25세)을 살해.
- 2004.06.01: 서울 신촌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20대 후반)을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6 초순: 신원 미상의 여성(20대 후반)을 살해.
- 2004.06.07: 장모 씨(26세)를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6.17: 김모 씨(30세)를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6.23 ~ 2004.06.25: 우모 씨(28세)를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7.01: 출장마사지 도우미 김모 씨(26세)를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1과학온+1
- 2004.07.03: 출장마사지 도우미 권모 씨(24세)를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7.09: 출장마사지 도우미 임모 씨(27세)를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2004.07.13: 출장마사지 도우미 고모 씨(24세)를 살해.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1신동아+1
3단계: 노점상 대상 살인 (2004.04.14)
- 2004.04.14: 서울 중구 황학동에서 노점상 안모 씨(44세)를 살해하고, 시신을 인천 월미도에 유기.Korea Science+2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2과학온+2
※ 이 기록은 실제 유영철의 발언과 범행을 바탕으로, 극사실적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한 허구적 서술입니다.
피해자와 유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이 콘텐츠는 범죄의 경각심을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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